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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오보사건, 1945.12.27.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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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오보사건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1면 기사.. 기사 내용에는 '외상회의에 논의된 조선독립문제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독립주장'이라 쓰여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은 모스크바 3상회의가 아직 끝나지 않은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가 '소련이 신탁통지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내용의 잘못된 보도를 내보낸 사건이다.

 

이 오보로 인하여 한반도에서는 찬탁파와 반탁파의 갈등이 폭발하게 되었으며, 오보의 영향은 한반도 분단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위키백과 에서..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삼십팔도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합동통신 워싱턴발 25일자 보도'를 근거로 한 이 기사는 1945년 12월 27일 아침 조선일보에 먼저 실렸다. 석간이던 동아일보는 몇 시간 뒤 같은 기사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실었는데,


다만, 동아일보의 경우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고 제목을 붙여 독자가 '미국은 우리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데, 소련은 우리를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인식을 뚜렷이 갖도록 했다.


그리고 당시 최대 우파 정당인 한민당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다.

* 동아일보는 한민당의 핵심인 김성수가 창간했고, 송진우가 사장으로 있던 신문이었다.


3상회의의 실제 합의 사항이 보도된 것은 12월 30일 이었고, 동아일보는 그 내용을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기사로 처리했다.


그사이에 서로 입장이 같지 않았던 이승만과 김구가 한목소리로 '신탁통치 반대!', '3상회의 결정 거부!'를 천명했고, 좌익에서도 인민당이 반탁을 선언했다.


일반 국민의 여론도 불붙었다. 27일부터 30일 까지 서울에서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와 파업이 잇따랐으며, 1945년은 격앙과 분노 속에서 저물어갔다.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안이 합의된 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탁통치안을 제시한 쪽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보도와는 반대로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으며, 사실 미국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주장해왔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과도 합의됐는데, 당시 루스벨트는 '한국인은 자치능력이 없다. 아마 40년 내지 50년 정도는 신탁통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으나, 소련의 스탈린이 '그렇게 길게는 안 된다. 5년 정도로 하자'고 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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